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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세이분석

에세이에서 ‘나’라는 화자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

by 알담지기 2026. 1. 24.
에세이를 읽다 보면, 객관적인 자료나 논리보다도 ‘나’라는 화자의 목소리가 더 오래 남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사실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위치에서 생각하고 있는지가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설명은 이해됐는데, 화자의 태도는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왜 에세이에서는 ‘나’라는 말이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지, 그리고 그 ‘나’가 왜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지 생각하게 됐다. 전문가의 설명보다 개인의 목소리가 더 신뢰를 얻는 순간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나’는 답을 제시하기보다 위치를 드러낸다

에세이 속의 ‘나’는 보통 자신을 권위 있는 자리로 올려놓지 않는다. 대신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지, 어떤 상태에서 이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여준다. 확신보다는 망설임이, 단정적인 판단보다는 현재의 시선이 앞에 놓인다.

이렇게 드러난 위치는 독자에게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다. 독자는 그 생각을 정답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지점에서 신뢰가 생긴다. 설득하려 들지 않는 태도가 오히려 설득력을 만든다.

불완전함이 남기는 흔적

에세이의 화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생각은 정리 중이고, 말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때로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때로는 스스로의 생각을 의심하기도 한다.

이 불완전함은 화자의 말이 꾸며진 주장이나 계산된 결론이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독자는 완성된 답보다, 고민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사고에 더 쉽게 마음을 연다. 설득은 논리 이전에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느낌이 든다.

경험은 판단이 아니라 여백으로 남는다

에세이에서 ‘나’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만, 그 경험을 보편적인 기준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이렇게 느꼈다고 말할 뿐, 이렇게 느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때 경험은 결론이 아니라 여백으로 남는다. 독자는 그 여백에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겹쳐 보게 된다. 화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설득은 그렇게 조용히 이루어진다.

설득은 과정에서 생긴다

에세이에서 설득력은 명확한 결론에서 나오지 않는다. 생각이 어떤 경로를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독자는 그 흐름을 따라가며 동의하거나, 혹은 자신의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된다.

‘나’라는 화자는 독자보다 위에 서지 않는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 같은 질문을 붙잡고 있는 사람으로 나란히 서 있을 뿐이다. 그 수평적인 위치가 글에 머무를 시간을 만들어 준다.

목소리가 신뢰로 바뀌는 순간

에세이에서 ‘나’의 설득력은 권위에서 나오지 않는다. 솔직하게 드러난 사고의 구조, 숨기지 않은 망설임,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흔적에서 만들어진다.

독자는 완성된 결론보다, 그런 목소리에 더 쉽게 신뢰를 보낸다. 에세이에서 설득이란, 누군가를 끌어당기는 기술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생각을 이어가는 방식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