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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세이분석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시기에 읽은 책 한 권

by 알담지기 2026. 1. 25.

이 글은 아무 계획 없이 책을 펼쳤던 어느 시기의 기록이다. 특별한 목표도, 생산적인 이유도 없이 시간을 보내던 날들이 이어졌고, 그 시간은 이상할 만큼 길게 느껴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무엇도 할 수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시기에 읽은 한 권의 책이 어떤 해답을 주었는지를 말하려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던 그 책이 왜 아직까지 남아 있는지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시간의 감각

그 시기에는 하루의 경계가 흐릿했다. 아침과 밤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명확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쉬는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쉬는 시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태였다. 몸은 멈춰 있었지만, 마음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감각에 붙잡혀 있었다.

특히 아무 이유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바쁘지 않다는 사실보다, 바쁘지 않은 상태를 설명할 말이 없다는 점이 더 불안했다. 그래서 책을 집어 들었다기보다는, 그저 손에 잡힌 물건이 책이었을 뿐이었다. 무엇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하루가 너무 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문장들

그 책은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해주지도 않았고, 지금 이 시간이 의미 있다고 설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문장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불친절하다고 느껴졌다. 책이라면 어느 정도는 독자를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문장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는 사실을. 무엇을 해야 한다는 지시도,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결론도 없었기에, 나는 그 책 옆에서 조용히 머물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를 고치려 들지 않는 태도가, 오히려 그 시기에는 필요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이유

그 책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읽고 나서 갑자기 무언가를 시작하게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 책을 떠올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시기의 감각이 함께 따라온다. 그리고 그 기억은 생각보다 부정적이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시간은 실패의 증거처럼 느껴지지만, 어떤 시기에는 멈춰 있는 상태 자체가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책은 그런 생각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나와 같은 속도로 존재해 주었을 뿐이다.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것일 것이다.